여행출발 -> 바르셀로나 -> 네르하 -> 세비야 -> 리스본
6일차
일출을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유럽의 발코니로 갔다. 어제 아침은 구름이 없어서 수평선에 노란색 선이 그어진 거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구름에 햇살이 비추어 더욱 아름다웠다. 또한 오늘 아침에는 노숙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어제 혼자 나와서 사진을 찍는데, 계속 어슬렁거리면서 왔다갔다 했다. 그래서 배경에 항상 그사람이 나왔다. 혹시 그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인가?
누에보 다리(론다) / 론다투우장
야간 운전을 피하기 위해 말라가를 지나쳐서 론다로 갔다. 가는 길은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자동차 전용도로라서 운전하기는 편했다. 중간에 국도 같은 작은 길로 연결되는 곳이 있었는데,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잠깐 차를 세우고 쉬었다. 마침 그곳에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시장 입구에 있는 과일 가게에서 오렌지를 샀는데, 주인이 딸기가 맛있다고 맛보라고 준다. 바로 먹어도 된다고 하기에 내 입에 넣었는데, 주인이 아내를 먼저 줘야한다며 한개를 더 준다. ㅎㅎ 딸기를 씻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딸기를 추가로 샀다. 근처 노천 카페에서 커피와 츄러스를 시켜서 먹었다. 난 이런 한적한 마을이 좋다. 관광지처럼 인공적으로 꾸며 놓지 않는 이런 곳이 좋다. 이곳은 우리나라 70년대 시골과 같은 느낌이었다.
누에보다리 근처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누에보다리를 구경했다. 근처에 오래된 투우장이 있었는데, 입구를 찾지 못해 헤멨다. 중국인 관광객을 따라 갔는데, 안으로 입장하지 않고 출구 쪽에 있는 투우사 동상 앞에서 사진만 찍고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는 투우장 반바퀴를 돌아서 입장을 했는데,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없었다. 안에는 흙으로 되어 있었고 주변에 좌석이 1,2층으로 있어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투우 기념관이 있었다. 투우사가 입는 옷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입장료에 비해 볼거리가 없었지만 세비야가 투우의 본고장이고 투우가 시작된 곳이라 이곳 경기장의 방문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 출구로 나오니, 기념품 가게랑 연결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출구는 기념품 가게와 연결되어 있었다.
누에보다리를 제대로 보기 위해 아랫쪽으로 향하는 곳을 가기 위해 3유로를 냈는데, 볼거리는 없었다. 꽃보다할배에서 기타연주 CD를 샀던 곳에서 우리도 기타연주CD를 샀다. 3종류의 CD를 팔고 있었는데, 자신이 연주한 것이고 하는 것을 12유로에 팔고 있었다. 우리는 2유로 깍아서 샀다. 그리고 나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는데, 아무런 말이 없이 그저 무심하게 선글라스만 쓰고 포즈를 취해 줬다. 가격까지 깍고 나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니, 기분이 언짢은 표정이다.
누에보 다리는 스페인의 건축가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가 설계해 1793년 완공되었다. 이자리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1735년 완성 8개월 만에 다리가 무너지면서 수십 명의 사람이 떨어지는 비극적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후 공사는 1751년에야 재개돼 무려 40년의 세월을 거쳐서 완성됐다. 다리 기둥을 잡고 저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득한 깊이와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머리칼이 쭈뼛 설 정도다. 다리 한가운데 작은 창이 보이는 곳은 과거 감옥이었다고 하는데, 한번 갇히면 영원히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다.
1785년에 만들어진 론다투우장은 세비야의 투우장 다음으로 오래된 투우장이자 스페인에 세워진 원형 투우장들의 모델이 된 곳이다. 투우장으로 들어서면 강렬한 황금색 모래가 눈을 부시게 한다. 경기장 끝에는 다음 날 경기에 나설 소들을 가두어두는 작은 공간이 있다. 자유롭게 야생에서 자란 소들을 이곳에 가둔 뒤 경기가 열리기 전 24시간 동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경기 당일 소들을 가둔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 영문도 모른체 뒤어다니게 된다. 투우사가 흔드는 천의 붉은색이 소를 흥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소는 색맹이기 때문에 붉은색보다는 흔들리는 것을 향해 돌진한다.정지 상태에 있는 투우사는 소의 관심 밖인 것이다. 어쩌다가 투우사의 자세가 흐트러져 움직임이 커지면 소에게 받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게 이 때문이다. 20~30분 정도의 싸움에서 죽은 소는 고깃집과 레스토랑에 팔려간다. 투우 경기가 끝난 직후면 이 요리를 먹기 위한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투우장 입구에 있는 투우박물관에는 현대 투우를 개척한 프라시스코 로메로와 그의 손자이자 6,000마리에 달하는 소에 칼을 찔러 박았다는 페드로 로메로를 비롯한 유명 투우사들의 사진과 투우복 등을 전시해 놓았다.
센테닐
누에보 다리 전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데, 걸어서 25분이나 걸렸다. 우리는 포기하고 다른 관광지로 향했다. 센테닐로 향했다. 그곳은 바위 밑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곳인데, 세계테마여행에서 나왔던 곳이다. 근처까지 차를 몰고 갔는데, 내려 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서 한참을 돌아서 갔다. 구글지도에서 목적지를 잘못 지정한 거 같다. 그곳에서는 약간 바람이 불었는데, 그늘이 지니 더욱 추웠다. 추워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식당에 갔는데, 이베리아 돼지고기를 팔기에 주문했다. 겉은 약간 바삭하고 안에는 육즙이 가득해서 부드러웠다. 가격도 바르셀로나나 네르하에 비해서 저렴했다.
숙소 도착 / 렌트카 반납
세비야로 가는 길에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고 나중에는 퇴근시간이라 겹쳐서 숙소에 도착하니 어두워졌다. 숙소 근처 골목에 진입해서는 안되는 골목을 들어가다가 현지 주민에게 안내를 받아 후진해서 빠져 나왔다. 중간에 아내가 호스텔의 위치를 알아서 아내에게 짐을 맡겨 놓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러 갔다. 세비야는 일방통행 도로가 많아서 헤멨다. 일방통행도로로 들어갔다가 경찰에 안 걸리고 빠져 나와서 숙소 근처에 있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호스텔로 가니 이미 아내가 모든 수속을 끝내놓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반납하러 세비야 기차역으로 향했다. 겨우 렌트카 반납장소를 찾았는데, 주유소를 찾지 못해 그냥 반납했는데 주유대행 수수료로 30유로는 더 받는다고 했다. 주유소가 바로 옆에 있어서 난 차를 빼서 기름을 채우러 갔다. 아우디는 주유구가 오른 쪽에 있는데 난 그냥 주유구 오른 쪽에 차를 세웠다. 다행이 기름을 넣는 사람이 반대편으로 가서 기름을 채웠다. 난 카운터로 가서 카드로 결제했다. 다시 차를 반납했다.
아내가 스페인 광장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가는 길이 너무 어두워서 포기하고 그냥 숙소까지 가기로 했다. 구시가 관광지가 아닌 곳은 도로가 깨끗하지 않고 거리도 어두웠다. 대형수퍼에서 직접 짜서 파는 오렌지를 사서 세비야 대성당까지 걸었다. 대성당 주변에 가니 노천까페에 사람들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거리도 밝아졌다. 그래도 바르셀로나보다는 어두웠다. 대성당의 히달라탑은 너무 높아서 널리 뒤로 물러서야 제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곳을 한바퀴 도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빠에야가 맛있어 보이는 “구스토”라는 식당에 들렀는데, 2인 이상 주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주문했다. 이곳 음식은 전부 맛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남긴 후기에는 너무 짜고 직원이 불친철했다고 하는데 난 그렇지 않았다.
7일차
살바도르 성당
세비야는 특별히 관광코스를 미리 생각해 놓지 않았다. 그냥 세비야 시내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호스텔 식당은 좁았다. 아침식사를 위해 테라스로 나가거나 소파에 앉아서 음식 접시를 들고 아침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다행이 테이블의 빈자리를 찾아서 아침을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먹었다. 12시에 세비야 대성당을 예약했기 때문에 숙소 근처에 있는 살바도르성당에 우선 들렀다. 11시에 입장이 가능해서 5분 정도 기다렸다. 우리가 구매한 티켓에 이곳도 포함되어 있어서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미리 출력해간 출력물에 있는 QR코드를 휴대용 스캐너로 스캔해서 입장여부를 체크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스페인의 관광지가 QR코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QR코드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QR코드를 이용해서 간편결제를 하고 있을 정도 이다. 성당 내부는 다른 스페인의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세비야 대성당
12시 입장시간에 맞춰서 세비야 대성당에 도착했다. 우리는 미리 입장권을 예매했기 때문에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했다. 세비야대성당은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다.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세번째 규모이다. 세비야대성당은 미리 준비해간 투어라이브라는 앱을 통해 설명을 들었다. 팔로미투어에서 투어를 담당하는 사람이 이곳의 설명을 녹음했다. 중요한 볼거리에 대해서는 사진으로 설명을 했다. 매우 유용한 어플이라서 다른 한국 여행객에게 추천했지만 아이폰에는 설치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이드 설명을 들으면 설명이외에는 볼거리를 놓치는 문제가 있지만 그나마 이러한 설명도 없으면 보고도 뭘 봤는지도 모르고 사진만 찍고 오게 된다. 대성당 옆에 오렌지나무 정원이 있었다. 이곳에는 분수도 있어서 한여름에 방문하더라도 잠깐 쉴 수 있을 거 같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콜럼버스의 무덤이다. 콜럼버스의 무덤이 공중에 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사벨여왕과 산타페협정을 통해 식민지의 수입의 1/10을 받기로 했는데, 콜럼버스가 무리하게 원주민을 학대하여 금을 모으자, 스페인에서 평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가 이사벨여왕이 죽자 남편인 페르난도2세가 협정을 파기하게 된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자신는 스페인땅을 밟지 않겠다고 했다. 콜럼버스의 무덤이 쿠바 등 여러나라를 거쳐서 이곳 세비야로 오게 되었다. 그의 유언을 일부나마 지키기 위해 당시 스페인 4개 지역의 왕이 무덤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중에서 2명의 왕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것은 콜럼버스의 발견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왕들이라 그렇게 조각상을 만들었다. (가이드 설명과는 조금 다르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 링크를 참고하시길)
대성당을 다보고 나왔는데, 뭔가 허전했다. 옥상투어가 있는데, 가는 곳을 모르겠다. 그래서 근처 안내센터에 문의하니 내 티켓을 확인하더니 12시에 옥상투어시간이라 이미 끝났으나 직접 가서 부탁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옥상투어는 2시가 마지막이라서 구경할 수 없었다. 우리는 12시가 세비야대성당 입장시간인 줄 알았는데, 옥상투어 시간이였다. 괜히 입장료 값만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랄다탑을 통해 멀리 세비야 시내를 관망할 수 있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스페인광장
우리는 세비야대학교를 거처 스페인광장에 이동했다. 왜 중간에 알카사르를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스페인광장을 보고나서 알카사르 입구로 갔지만 시간이 늦어서 입장할 수 없었다.
스페인 광장은 아내가 꼭 가고 싶다고 한 곳이다. 이곳에서 김태희가 플라멩코 춤을 추는 광고를 찍었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2004년도에 찍었던 TV광고이다. 그것도 딱 하루만 배워서인지 춤동작은 조금 어색했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 잠깐 앉아서 쉬었다. 마차투어를 하고 싶었지만 말똥냄새도 나고 가격도 비싸서 포기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을 타고 세비야대성당까지 이동해서 알카사르를 구경했으면 시간이 딱 맞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미 본 알함브라궁전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우리는 세비야대성당에서 걸어서 숙소로 오는 길에 쇼핑을 했다. 유명한 올리브오일 가게에 들러서 오일도 사도 화장품도 샀다. 그리고 알팔파약국에 들러서 피부에 좋은 비타민 앰플인 마티덤을 2세트를 샀다. 나중에 아내는 이곳에서 좀 더 사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애들 데리고 가서 왕창 사와야 겠다.
플라멩고 공연
숙소에 와서는 플라멩고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저녁을 해 먹었다. 그동안 계속 들고 다닌 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져온 인스턴트음식을 먹어야 했다. 우리는 끓고 있는 냄비에 햇반 1개를 넣고 5분 뒤에 라면 2개와 김치 1캔을 넣어서 한국식 빠에야를 만들었다. 국물이 거의 없는 라면에 불어터진 밥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김에 싸서 먹었더니 아주 맛있었다. 주변에 있는 외국인들은 우리가 먹는 양을 보고 놀래는 표정이다.
플라멩고 공연장에 시간을 맞춰서 갔는데도 사람들이 엄청 줄을 서고 있었다. 표를 파는 곳에 가서 이름을 확인하고 티켓을 받아서 줄을 섰다. 우리가 맨 마지막이라서 입구 근처에 앉았다. 예매를 안하고 온 사람들은 2층에 앉는 거 같았다. 내가 2004년도에 봤던 플라멩코와는 많이 달랐다. 열정적인 춤을 추고 나서 퇴장하기를 여러번 반복한다. 이번 공연은 거의 탭탠스가 가까웠다. 공연 중에는 사진을 못 찍게 했다. 공연이 끝나고 추가 공연을 할때에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해서 몇 장 찍었다. 2004년도에 그라나다 알바이신지구에서 본 동굴 플라멩코에서 느꼈던 정열적인 공연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내에게 플라멩코의 본고장에서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