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르하(’19)

여행출발 -> 바르셀로나 -> 네르하 -> 세비야 -> 리스본

4일차

어제 삼각대가 없어서 제대로 찍지 못한 일출을 찍으러 호텔을 나섰다. 하지만 해변까지 갔다 오면 그라나다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놓칠 거 같았다. 그래서 람블라스 거리 근처에서 아침 풍경을 찍고 왔다.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이동

숙소로 와서 짐을 꾸리고 급하게 아침을 먹으러 갔다. 비싼 아침식사까지 포함한 가격이라서 제대로 아침을 먹었다. 하몬, 치즈, 다양한 과일과 빵, 건강 식 씨앗 등 아침이 맛있는 곳이다. 더우기 커피까지 맛있었다. 첫날은 헤메였지만 이젠 제대로 캡슐커피를 내릴 줄도 알았다.

숙소에서 까딸루냐광장까지는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첫날은 멀게 느껴졌지만 며칠동안 자주 다녀서인지 이젠 거리가 익숙해졌다. 우리가 내린 곳에서 공항버스를 타면 된다. 우리는 왕복 티켓이 있어서 바로 탑승했지만 없는 경우에는 버스기사에게 직접 현금을 주고 구입하면 된다.

버스를 타고 올때에는 설렘이 있었지만 갈때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바르셀로나는 정말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다.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조금만 신경쓰면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로마 처럼 칼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소매치기 사실을 알았을때 얘기하면 돌려준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해서 부엘링항공 데스크로 갔다. 다른 한국인들은 무인발권기에서 처리했는데, 난 잘 몰라서 직접 유인창구로 갔다. 무인발권기에서는 수화물에 대한 라벨까지 발급되어 무인수화물 창구에 라벨을 붙여서 보내면 된다고 한다. 수화물이 다른 곳으로 배송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걱정이 들어서 캐리어에 붙어 있는 다른 태그를 전부 제거했다.
바르셀로나 공항을 역시 컸다. 우리는 탑승장까지 한참을 걸어 갔다. 저가항공이라 그런지 비행기 내에서 물 한병을 주지 않았다. 1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내리니 그라나다였다. 중간에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설산을 정말 아름다웠다.

알함브라 궁전

그라나다 공항을 작아서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 건물까지 걸어서 갔다. 들어가자 바로 짐을 찾는 곳이었다. 우리 짐을 바로 나왔다. 그런데, 보통은 같이 나오는데, 캐리어 한개만 있어서 이상했다. 난 렌트카 사무실로 가기 위해 먼저 나왔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사람이 짐을 가져간 거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항 출구 근처에서 작은 캐리어를 들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아내는 마침 다른 사람의 짐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 짐을 잘못 가져 간사람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도 계속 우리 짐을 들고 있었다. 우리가 마침 그사람의 짐을 가져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였으면 그사람을 다시 짐 찾으로 들어가야 했다.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부부였는데, 우리와 같은 렌트카회사에서 예약했는데, 엉뚱한 렌트카 회사에서 대기중이였다.

우리는 알함브라 궁전으로 이동했다. 알함브라 궁전은 비수기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2시 입장인데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다행이 같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이 2시 입장하는 사람 앞으로 오라고 해서 중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서 걸어갈때에는 약간 더웠는데, 나르스 궁정에 입장하니 그늘이 져서 약간 쌀쌀했다. 알함브라 궁전은 정원부터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하이라이트인 나르스궁전을 먼저 봤다. 스페인에서 이슬람이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곳이며, 다행이 이슬람 유적을 망가드리지 않고 제대로 보존되고 있다. 당시에는 이슬람이 철수하면 그 성곽을 부수거나 더욱 성대하게 개조하여 기독교 교회로 만들었다. 알함브라 궁전을 비롯하여 이슬람 건축물은 반복된 무늬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규모가 커서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이곳의 하일라이트는 정원이 아닌가 싶다. 그중에서도 아라야네스 안뜰에 있는 분수와 같이 조성된 정원은 정말 아름답다.

그라나다는 만년설이 덮인 네바다 산맥 기슭에 자리한 도시다. 멀리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늘어선 오렌지 나무 가로수가 이국의 정취를 더한다. 간혹 탐스럽게 열린 오렌지를 따서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관상용이라 맛은 매우 쓰고 시다고 한다. 시내에서 저 멀리 보이는 네바다 산맥은 한여름만 제외하면 눈이 녹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라나다는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라나다는 711년경부터 약 8세기 동안 스페인을 다스렸던 이슬람 왕국의 마지막 거점이었다. 622년부터 확산하기 시작한 이슬람 세력은 711년 스페인 땅에 상륙하는데, 당시 스페인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의 침입 때문에 국력이 쇠퇴한 상태였다. 이슬람은 많지 않은 병력으로 진격에 성공하여 720년경에는 스페인 북서부의 작은 땅을 제외하고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슬람은 자신들이 통치하게 된 스페인 땅을 ‘알 안달루스’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800여 년 정도를 지배하면서 스페인을 이슬람 종교와 문화의 색으로 짙게 물들였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스페인 북서부의 아스투리아스 지역으로 몰리게 된 구 에스파냐 세력은 722년 코바돈가에서의 승전을 기점으로 반격을 시작하였다. 이후 8세기 초부터 국토회복운동, 레콘키스타를 벌이면서 느리지만 조금씩 영토를 늘려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성인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유해가 스페인 북서쪽에서 발견되어 기독교들의 종교적 구심점이 되었고, 그곳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 이름 붙였다. 이후 많은 기독교인들이 멀고 위험한 예루살렘 대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했다.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겼던 국토와 종교, 문화를 되찾으려는 레콘키스타가 진행되면서 카톨릭 세력은 1236년 당시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던 코르도바를 탈환한다. 이슬람 잔존 세력은 그라나다로 후퇴했고 무하마드 1세가 그곳에 나사리 왕조를 세웠다. 그후 약 250년 동안 그라나다는 스페인 땅에 남은 마지막 이슬람교도의 거점이었다. 나사리 왕조의 알함브라 아래에 있는 큰길에는 레콘키스타를 완성한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 부불르 기념하여 ‘가톨릭 부부 왕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492년 그라나다는 함락되었고, 나사리 왕조의 보압딜 왕은 알바이신 지구 뒤쪽 ‘한탄의 고개’를 넘어 북아프리카로 쫓겨난다.

알람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이다.  나사리 왕조의 번영기였던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옛 군인들이 집터와 성벽, 탑으로 이루어진 알카사바, 알람브라의 하이라이트인 나사리에스 궁전과 르네상스풍의 카를로스 5세 궁전, 한 계절에만 썼던 여름 궁전 헤네랄리페다. 알람브라는 이들을 모두 통칭하는 말로, 14만 2,000㎡(약 4만 3천평)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4시가 넘어서 우리는 다시 성 니콜라스 전망대에 가서 멀리서 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전경을 구경했다. 조금 일찍 네르하 숙소로 가려다가 아쉬운 마음에 다시 니콜라스 전망대로 가서 노을까지 봤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 정도였다. 난 근처 비싼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주인이 그곳은 비싸니 근처 노상주차장을 알려줘서 저녁 먹고 이동주차했다. 늦은 시간이라 주차요금을 받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차를 세우고 왔다. 구글지도는 쇼핑몰 주차장으로 되어 있는데, 쇼핑몰은 없고 그냥 공터만 있는 곳이다. 낮에 방문하면 차를 세우고 나면 누가 다가와서 1유로를 내라고 한다. 1명이 근무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이나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우면 공짜로 세울 수 있다.

5일차

아침에 작은 마을인 네르하를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마을길은 유럽의 발코니로 향해 있었다. 특별히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닌데,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서 수평선에 해가 뜨면서 빨간색 수평선이 그어졌다. 정말 장관이었다. 그곳에는 부지런한 한국인 커플외에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아침이었다. 10분 정도 열심히 사진을 찍더니, 해 뜨기 전에 바로 가버렸다. 아쉬운 것은 사진 찍기 제일 좋은 곳에 노숙인 같은 사람이 있는데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사진 찍는 것을 방해했다. 비켜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왠지 돈을 요구할 거 같아서 말을 걸 수 없었다.

이곳 숙소를 운영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 아침시간에는 우리가 직접 차려 먹어야 한다. 전날 저녁에 주방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주방에는 우리나라 음식도 있었다. 대부분 바께트 빵에 다양한 식재료를 넣어서 씨리얼과 함께 먹는 정도였다. 대신 저녁은 직접 만들어 준다. 주방 앞에 테라스가 있는데, 날씨가 따뜻하면 이곳에서 식사를 해도 좋을 거 같았다. 이곳이 에어비앤비 숙소 정보에 나오는 곳 중 하나다. 어디든 사진과 실제는 다르게 마련이다.

 

네르하 숙소 정보: https://www.airbnb.co.kr/trips/v1/reservation-details/ro/RESERVATION2_CHECKIN/HMZNCTDDTB

프리힐리아

근교에 있는 프리힐리아로 차로 이동했다. 프리힐리아는 언덕 위에 하얀색으로 지어진 집들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통영의 벽화마을 같은 곳인데, 벽이 전부 흰색이다. 우리는 미리 무료 주차장 정보를 알지 못해서 그냥 지역 주민이 세우는 곳에 주차했다. 나중에는 불안해서 일찍 내려왔다. 내가 다닌 곳중에서는 미터기가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지하주차장에 2번, 사람이 있는 곳에 한번 총 3번의 유료 주차장에 세웠다. 한번은 늦은 시간이라 꽁짜로 세웠고 나머지는 지역 주민이 세우는 곳에 세웠다. 다행이 주차위반 딱지는 떼지 않았다.

유럽의 소도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발코니 등에 화분을 걸어놔서 꽃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골목을 다닐때 기분이 좋아진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어느 관광도시는 의무적으로 꽃을 걸게 되어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곳도 그런지 모르겠다.
이곳은 문패도 타일로 되어 있다. 심지어 수퍼마켓 표시도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프리힐리아는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주택이라 다니기 불편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관광객으로 인한 피해도 있을 거 같다. 그냥 골목을 걸어다니다가 아내 목걸이를 샀다. 오는 길에 전망이 좋은 곳에서 타파스 세트를 주문해서 먹었다. 6가지 정도되는 다양한 타파스가 나왔다. 그냥 술안주로 먹기에 적당한 수준이었다.

유럽의 발코니

다시 네르하로 와서 관람버스를 탔다. 2대를 묶어서 다니는 버스인데, 영어로 네르하를 소개시켜주는데 못알아 듣겠다. 마을을 두 바퀴 돈다. 그냥 다니면서 작은 소도시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했다. 유럽의 발코니로 와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는 바르셀로나처럼 많이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주방이 끝날 시간이라 추가 주문할 것인지 묻는데, 우리는 주문한 거 이외에 추가로 주문하지 않았다. 제법 날씨가 따뜻해서 햇볕 아래에서는 약간 뜨거울 정도였다. 어쨌든 따뜻하니 좋았다. 밥을 먹고 나오면서 과일주스를 샀는데, 2.5유로에 여러가지 과일을 직접 갈아서 믹스해 준다. 나는 여행 다니면서 과일을 꾸준히 먹는 편이다. 비타민C를 보충해야 피곤도 풀리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유럽의 발코니에 앉아서 공연하는 것을 들으면서 해가 지기는 기다렸다. 해가 질 무렵이 되니 중국인 한무리가 몰려오더니 노을 사진을 찍고나서 전부 사라진다. 하지만 서양사람들은 그곳에 굉장히 오래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거 같았다. 우리도 해가 질 때까지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서 숙소로 왔다. 오늘 저녁요리는 빠에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곳의 음식 중에 맞는 것은 빠에야이다. 타파스 중의 한 종류인 감자요리도 같이 나왔는데, 빠에야보다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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