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찾아서

나는 최근에 상원사로 등산을 다녀왔다. 상원사 입구에 있는 표석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입구에 놓은 표석치고는 엄청난 크기인데가 글씨가 검은색이 아닌 금색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등산을 다녀오고 나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표석글씨가 신영복 교수의 글씨체라는 것을 알았다. 신영복 교수의 글씨체가 유명해서 “처음처럼” 소주에 쓰여진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현판이나 표지석에도 글씨를 남긴 것은 몰랐다. 좀더 알아보기 위해 이책을 구입했다.

이책은 원래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교수가 쓴 글씨를 찾아가서 그 글씨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글이다. 이책의 제목을 “변방을 찾아서”라고 지은 이유는 신영복 교수가 쓴 글씨가 지역적으로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곳의 성격 또한 주류 담론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신영복 글씨가 가장 많은 곳은 민주 열사 묘비와 대학의 추모비이다. 신문에 실리는 글이라서 선별을 하였으며, 이 책에 실리지 않은 곳외에도 독자와 함께 그 의미를 공감할 수 있는 글씨들이 많이 남아 있어 교수는 언젠가 조용히 찾아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찾아가기 어려웠을 거 같다. 경향신문의 연재가 8회로 끝난 이유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책을 출간한 뒤 몇년 뒤에 돌아가셨다.

이책은 내용은 이미 연재를 통해 세상에 나온 글이기에 이책을 출간하면서 서론에 정리의 글을 담았다. 서론이 31페이지까지 이어진다. 서론이자 본문이며 마지막 말까지 포함되어 있다.

초반에 언급했던 상원사 표석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면 글씨를 요청한 정념스님이 벽사(?邪)의 색인 금색으로 입혀 청정 도량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고 한다. 벽사는 사슴과 비슷하게 생긴 상상의 동물인데, 사악을 물리친다고 하여 인장에 장식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표석도 우측에 세로로 “오대산상원사”라고 적혀 있고 왼쪽에 인장처럼 “적멸보궁”, “문수성지”이라고 새겨져 있다. 상원사를 가게 되면 “적멸보궁”과 “문수성지”의 의미와 유래를 알면 좋을 거 같다.

아래 부분은 이책에 나온 부분인데, 그대로 옮겨 본다.

‘변방을 찾아서’라는 기획 연재는 봉하 묘역을 끝으로 일단 마감하였다. 찾아갈 글씨가 여러 곳에 더 있지만 마지막 찾은 곳이 봉하 묘역이라는 점에서 마감하기에 미련은 없었다. 봉하 묘역은 그만큼 변방의 의미가 증폭되어 안겨 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 묘역의 주인공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삶은 ‘스스로를 추방해 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낮은 곳. 변방으로 자신의 삶을 추방하는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대통령’이라는 중심에 서게 되는 그야말로 변방의 창조석을 극적으로 보여 준 삶이다.

인류사는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왔다. 역사에 남아 사표(師表)가 되는 사람들 역시 변방의 삶을 살았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글씨를 써서 기록에 남겨진 것은 없지만 언젠가 나의 추억의 장소를 돌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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