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성적으로 여기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매사를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것은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고 자아를 철저하게 긍정하는 일이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매슬로의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 현실을 더욱 효과적으로 지각하고 쾌적한 관계를 유지
- 자연을 비롯해 자신과 타자를 수용
- 자발성, 단순함, 자연스러움
- 과제 중심적
- 초월성 – 프라이버시의 욕구
- 자율성 – 문화와 환경으로부터의 독립·능동적 인간
- 언제나 새로운 인식
- 신비로운 경험 – 최고의 체험
- 공동체 의식
- 대인 관계
- 민주적인 성격 구조
- 수단과 목적의 구별, 선악의 구별
- 철학적이고 악의 없는 유머 감각
- 창조성
- 문화에 편승하기를 거부
요즈음 자살, 묻지마 폭행, 갑질문화 등 사건.사고의 소식을 접하면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가족간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인간관계를 배우면서 성장한다.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먼저 올바른 인생관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현대에는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다. 이럴수록 가치관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우리는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게 되고 주위 사람들이 아닌 책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하는 2번째 기회를 갖게 된다.
이책의 제목에 왜 “무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현대 시대에는 방어를 위해서라도 정말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무기”가 필요하다. 이책의 서두에 왜 철학을 배워야 하는지 설명이 나와 있는데, 너무나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이 최근에 다른 글에서 베끼는 식의 인용의 나열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이 뚜렷해서 쉽게 이해가 된다. 속으로는 철학을 공부해서 이렇게 글을 잘 쓰나 싶을 정도이다. (기회가 되면 머리말이라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 문체가 다른 작가와 다르다.)
저자는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로 네가지 이점을 제시하고 있다.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게 해 준다.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이 대체 어떤 흐름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깊이 이해하는 데는 과거 시대를 살던 철학자가 제안한 다양한 사고법이 큰 도움이 된다.
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철학의 역사는 모두, 지금껏 세상에서 상식으로 인식되거나 당연하다고 여겨진 일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역사다. 철학자가 문제를 나름대로 답을 세상에 내놓아 한동안 정론으로 인식되면, 다른 철학자는 비판하여 다른 답을 제시한다. 이렇게 철학은 ‘제안 -> 비판 -> 재제안’의 흐름의 연속이다. 우리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현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비즈니스맨은 철학을 배움으로써 자기 행동과 판단을 무의식중에 규정하고 있는 암묵적인 전제를 의식적으로 비판하고 고찰하는 지적 태도와 관점을 얻을 수 있다.
3) “어젠다를 정한다.” 과제를 정하는 일은 바로 혁신의 출발점이므로 상당히 중요하다. 모든 혁신은 사회가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실현되게 마련이므로, 과제가 설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혁신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중요한 과제 설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현실로부터 과제를 선택해 끌어내려면 반드시 상식을 상대화해서 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교양”이 중요하다. 혁신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의심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의심하다가는 일상생활이 엉망진창이 된다.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즉 교양을 갖춰야 한다.
4)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과거 수많은 철학자가 동시대의 비극을 마주할 때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발하고 같은 비극이 두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고뇌하고 이야기하고, 또 글로 남겼다. 우리는 그들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교훈을 배워야 한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자는 대부분 실패한 경제학자의 노예다.”
실무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개인의 체험을 통해 얻은 편협한 지식에 의거해 세계상을 그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자기만의 세계상을 품은 사람들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묵인할 수 없다.
우리가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확실해졌다. 일반적인 철학 개론서는 시대순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시대적으로 어떻게 철학이 변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책에서는 사람, 조직, 사회, 사고 등으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비록 시대순으로 정리하는 게 철학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실무자로 철학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저자의 분류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책은 현실의 쓸모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만을 기준으로 평가해서 담았다.
저자는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계획을 꾸밀때 600만명을 ‘처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의 재판과정에 참여한 철학자는 ‘악의 평범성’을 얘기한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시스템에 올라 타 그것을 햄스터처럼 뱅글뱅글 돌리는 데만 열심이었던 하급관리에 의해 유대인의 처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를 부여된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도 자체를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 가는 데 사고와 행동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조직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검찰에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직이 아닌 인류의 가치에 충성을 해야 한다. 윤리교육시간에는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말라고 한다. 부당한 지시의 가치판단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회사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부당하지 않은 지시일까? 경륜경정은 사행사업이라고 한다. 그러한 사행사업의 매출을 올리기 위한 활동은 올바른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 아! 정말 철학적 고뇌가 필요하다.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꺼이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
리언 페스팅어(Leon Festinger, 1919~1989)
6.25 전쟁 당시 미국은 포로가 된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단기간 내 공산주의에 세뇌당하는 사태에 당황했다. … 그들은 포로가 된 미군에게 ‘공산주의에도 좋은 점은 있다’는 간단한 메모를 적게 하고 그 포상으로 담배나 과자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을 주었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미군 포로는 착착 공산주의로 돌아섰다.
…
이해하기 힘든 이 사태를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는 설명 가능하다. 인지 부조화 이론의 틀에서 미군 포로들의 심리 변화 과정을 알아보자. 우선 자신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 공산주의는 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포로가 되어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명분이 성립되므로 사상과 신조에 반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심리직 압박감이 해소된다. 하지만 실제로 받은 것은 담배와 과자 정도의 소소한 포상일 뿐이다. 이래서는 사상과 신조에 반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죄책감의 원인은 ‘공산주의는 적’이라는 신조와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행위 사이에 발생하는 부조화이므로, 이 부조화를 해소하려면 어느 한쪽을 변경해야만 한다. 이때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변경할 수 있는 것은 공산주의는 적이라는 신조 쪽이다. 그리하여 이 신조를 공산주의는 적이긴 하지만 몇 가지 좋은 점도 있다고 수정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와 신조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화의 강도를 낮추는 것이다.
우리는 신념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과관계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인지 부조화 이론은 시사한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이 일어나고, 나중에 그 행동에 합치되도록 의사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페스팅어가 내놓은 답이다.
… (페스팅어의 후속실험) ..
대가가 고액이면 부조화는 작아진다. 싫은 일이라도 대가를 위해서 했을 뿐이라는 명분이 생겨서다. 하지만 대가가 작으면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지므로 지루한 작업이었다는 인지를 바꾸려는 동기가 강해진다.
개인의 양심은 아무런 힘이 없다.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자유의사가 있어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국 예일 대학교의 밀그램 교수는 이에 의심을 품었다.
밀그램 교수가 실시한 아이히만 실험의 결과는 우리에게 다양한 암시를 던져 준다. . . . 밀그램의 실험은 악한 행동을 하는 주체자의 책임 소재가 애매하면 애매할수록 사람은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제심과 양심의 작용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 현상은 아주 위험하다.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양심이나 자제심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면, 조직이 비대한 만큼 악행의 규모 또한 비대화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다. 앞서 소개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관료제의 특징인 ‘과도한 분업 체제’ 덕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 . . 이러한 체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구성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책임소재가 애매하게 분단된 체계를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렸다고 술회했다.
자신의 양심과 자제심을 자각시키는 아주 조그마한 지지라도 받으면, 사람은 누구나 권위에 대한 복종을 멈추고 양심과 자제심에 근거한 행동을 취한다는 걸 말해 준다. 밀그램 교수가 실시한 ‘아이히만 실험’의 결과에서 인간은 권위에 놀랄 정도로 취약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 권위에 대항하는 약간의 반대 의견 또는 양심과 자제심을 부추기는 작은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간성에 근거에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이는 조직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맨 먼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정리해 보자. 현대와 같이 분업이 표준화된 사회에서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 한 채 거대한 악행에 가담하고 있기 쉽다. 수많은 기업에서 행하고 있는 은폐와 위장은 바로 분업에 의해 가능했다. 이러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체계에 속해 있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눈앞의 일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짚어 보고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큰 테두리안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무언가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용기를 내어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자기 의견을 적극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뛰어난 리더의 조건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
부하에게 사랑받는 리더와 부하가 두려워하는 리더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난 리더일까?
마키아벨리는 체사레의 용기와 지성, 능력, 특히 결과를 위해 비정한 수단도 불사하는 자세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오직 도덕적이고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전쟁에는 약했던 피렌체의 지도자들이 체사레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배우길 바랐다. 이 염원이 바로 『군주론』의 집필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더 나은 통치를 위해서는 비도덕적인 행위도 허용된다고, 즉 그 행위가 더 나은 통치라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 것 뿐이다. 그도 미움을 사고 권력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부도덕성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 . . . 마키아벨리는 부도덕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냉철한 합리자가 되라고 조언한 것뿐이며, 때대로 합리성과 도덕성이 부딪힐 때 합리를 우선적으로 할 것을 강조했다.
리더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황에 따라 환영받지 못하는 결정이나 부하에게 상처를 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미키아벨리는 비즈니스든 사회 조직이든, 혹은 가족 안에서든 장기적인 번영과 행복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리더는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리던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때때로 고독하고, 암흑의 책임을 떠안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권력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어떤 의견이 어더한 반론에도 논박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와, 애초에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목적으로 미리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은 이것 외의 방법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합리적인 보증을 얻을 수 없다.어떤 사람의 판단을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경우, 그 사람이 신뢰를 받게 된 것은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항상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능한 받아들렸으며, 잘못된 부분은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를 스스로도 되짚어 보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하기를 습관으로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라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두루 듣고 사물을 모든 관점에서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느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이외의 방법으로 진리를 얻는 현인은 없으며 지성의 특성을 보더라도 인간은 이 이외의 방법으로는 현명해질 수 없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