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솔직히 이번에서야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그동안 군주론에 대한 요약 정보만 보거나 애들용 만화책을 통해서만 접했다.
대부분은 군주론에 나오는 군주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였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시점에 아직 당시의 유럽의 상황과 피렌체의 현실에서는 올바르게 판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키아벨리는 로마.그리스 고전 및 라틴어를 배우며 자랐다. 군주론을 쓰기 전에 피렌체의 담당 서기관으로서의 경험과 로마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군주론으로 정리한 것이다. 물론 책의 서두에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치는 글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살리고 싶어서 공직을 희망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두를 제외하고는 짧고 명료한 설명으로 군주에 대한 입장을 잘 정리했다.

어떻게 군주정을 통치하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2장부터 11장까지 서술하고 있다.
군주의 핏줄에 길든 세습 정체에서는 신흥 정체에서보다 그 정체를 유지하기 쉽다. 왜냐하면 세습 군주는 선조 전래의 통치 형태를 등한시하지 않기만 하면 되고, 예측할 수 없는 이변에 대해서는 그저 적당한 시간을 벌어두기만 하면 된다. 어지간히 강대한 권력이 나타나 군주에게 권력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 한 군주의 정체에 남아 있을 수 있고, 혹여 정권을 빼앗겨도 그 찬탈자의 몸에 불길한 그림자가 그리워지면 다시 그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 왜냐하면 선천적인 군주는 새로 군주가 된 자에 비해 남을 해할 필요도 이유도 별로 없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정말 나쁜 짓을 하여 원한을 사지 않는 한, 신민의 흠모를 받는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신흥 군주정에서는 좀 더 복잡하다. 정변들의 근원은 사태가 더욱 좋아지리라는 믿음에서 백성이 지배자를 바꾸고 싶어 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신생 군주는 그 군주국을 점령할 때 해를 끼친 모든 자를 적으로 돌려야 하고, 그곳을 점령할 수 있게 도와준 자들을 흡족하기 해주지도 못한다.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강한 수단을 쓰지 못하며, 그들은 아군으로 붙잡아두지도 못한다.
반란을 일으킨 지역을 다시 정복하면 더는 쉽게 잃지 않게 된다는 말은 맞습니다. 지배자는 반란을 빌미로 괘씸한 자들을 벌하고, 의심스러운 자들의 죄를 끄집어내고, 약점을 보강하면서 더욱 무자비하고 강력하게 처신을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풍토를 가진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곳을 지배하던 군주의 핏줄을 완전히 없애기만 하면 유지하기 쉽다. 그러나 언어, 풍습, 제도가 서로 다른 지역을 새로 획득하면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한다. 최선의 방법은 그 지배지를 획득한 인물이 직접 그곳에 가서 정주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주둔지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군사 일을 겸하는 군대인 상주병을 보내는 것이다. 로마인이 그리스를 정복하였을때 사용한 방법이다.

군주정에서 새로 획득한 지배지를 유지하는 방법은 한 명의 군주를 두고 다른 모든 사람이 신하가 되는 방법과 봉건 제후를 통해 다스리는 방법이다. 이러한 곳을 점령할 때에는 첫 번째 방법의 경우에는 획득하긴 어려워도 유지하기는 쉬우나, 봉건제후가 있는 곳은 점령하기는 쉬우나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11장까지는 위와 같이 군주정의 특징을 자세히 분석하였으며, 책의 후반부에는 군대 운영, 군주의 정치적/논리적인 역량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군대의 종류와 용병에 관해서 설명되어 있다. 특히, 당시에 이탈리아에서는 용병을 통해 전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용병에 대한 사례를 많이 언급하여 용병을 활용하지 말라고 정리하고 있다.

군주라면 누구나 자비롭고 냉혹하지 않다는 평판을 받고자 해야 한다. 무릇 군주는 자기 신민의 결속과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냉혹하다는 악평 따위는 개의치 말아야 한다. 지나친 자비로 말미암아 살육과 약탈의 온상이 되는 무질서를 함부로 내버려 두는 자들보다 약간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쪽이 훨씬 더 자비로운 것이다. 사랑의 대상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일반적으로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알면서도 모르는 체를 하거나 일부러 숨기기도 하고, 위험이 닥치면 재빨리 도망치기 때문이다. 군주는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증오는 피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만약 누군가의 피를 흘리게 해야 할 때에는 적절한 명분과 명백한 이유를 들어서 이를 단행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타인의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이라 살해당한 아버지는 잊어도 빼앗긴 재산은 잊지 못하는 법이다.
군주가 군대를 이끌고 수많은 병사를 통솔할 때는 냉혹하다는 평판에 신경을 쓸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평판없이는 군대의 통일을 유지할 수 없고, 어떠한 군사행동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싸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법에 따른 것과 힘에 따르는 것이다. 군주는 2가지 방법을 교묘하게 구분해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신중한 인물이라면 신의를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해가 될 때나 약속을 하게 했던 이유가 사라졌을 때에는 신의를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는 안 된다. 만약 인간이 모두 선량하다면 이러한 권고는 온당치 않을 것이나 인간은 사악한 존재여서 군주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을 터이기에 군주 역시 그들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군주는 약속의 불이행을 윤색하기 위한 합법적인 이유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군주는, 특히 새로 군주가 된 사람은 정체를 유지하기 위해 때에 따라서는 신의를 어기고 자비심을 등지고 인간성을 저버리고 종교를 거역해야 하기에 인간을 선량한 존재로 부르기 위한 사항을 모두 다 지킬 수는 없다. 가능한 한 선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악한 태도를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 군주는 다섯 가지 자질(자비, 신의, 인간미, 성실, 신앙심)을 갖추고 있지 않음을 드러낼 수 있는 말은 절대로 입에 담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겉보기에 아주 자비롭고 신의가 두텁고 인간적이고 성실하고 신앙적으로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행동, 특히 어떤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제재당할 일이 없는 군주의 행동은 결과만이 주목받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오로지 승리하여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마키아 벨리를 근대 정치학의 선구자로 부르며, 이 책을 통해 탁월한 리더의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군주론의 사상을 통해 춘추전국시대나 불확실한 국제 정치에는 적용할 수는 있지만, 현재의 우리 시대에는 조금 맞지 않는다. 아마 정치에서는 적용할 수 있지만 나는 리더의 조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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