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는 해외여행이라 도착부터 설레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공항에 있는 여행안내소에서 2박을 묵을 숙박지를 예약하는데도 오래 걸렸다.그 주말에 런던 근처에서 무슨 큰 행사가 있어서 대부분 작은 숙소의 예약은 끝났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호텔 2곳에 숙소를 정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영국의 소요경비의 절반이 숙박비로 나갔다.
숙소는 전철역 근처라 찾기는 쉬웠다. 하지만 새벽인데다가 역 주변이 지저분하고 흑인들이 많이 서성거려 겁이 났다. 다행이 숙소는 크지 않았지만, 깨끗하고 조용했다 (그곳이 여행 중 묵었던 숙소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이였다.)
<윈저성> 1994.12.14
호텔에서 제대로 식사 후 짐을 맡기고 윈저성으로 출발했다. 기차 타고 교외로 나오니 훨씬 좋았다. 시골이라고 하지만 도로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잘 살았다. 미래의 한국의 농촌상이었다. 윈저성 밖에 상가가 많아 구경을 했다. 상가를 나오니 한적한 시골 놀이터가 나왔다. 거기에서 점심(빵)을 먹었다. 근처에 굉장히 큰 거위에 남은 빵을 다주고 다시 런던으로 왔다. 자연사 박물관을 들러 유럽 대륙으로 가기 위해 버스 타러 갔다. 2층버스였는데 화장실도 있었다. 이 버스에 탄 채로 배에 타서 도버해협을 건넜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체구가 워낙 커서 좁아 보였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보니, 유럽대륙을 달리고 있었다. 이제서야 유럽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신선한 느낌은 암스테르담 역에 도착하면서 유럽대륙에 대한 헛느낌은 산산히 부서졌다. 암스테르담역에 2-3m에 한 두명이 앉아 있거나 벽에 기대서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면 없던 사람도 갑자기 나타나 마약 있다고 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겁이 났다. 하지만 조금 뒤에 무장한 경찰이 경찰견을 데리고 순찰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됐다. 짐 보관소 근처에 경찰사무실이 있어 소지품에 마약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것 같았다.
기차 시간이 남아 근처를 둘러 보기로 했다. 자전거 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도로에도 자전거 도로가 있어서 별도로 차도나 인도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어 안전했다. 미술관을 보고 나오니, 무지개가 나무에 걸려 있었다. 암스테르담역의 불쾌한 첫인상도 이젠 완전히 없어졌다.뮌헨역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탔으나 잘못 갈아탔다. 기차에서 동양계가 있어 말을 걸었으나 한국말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더니, 한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로 입양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인임을 기억하라고 하회탈 목걸이를 선물했다. 우리나라의 입양현실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뮌헨>12.14
전혜린을 기억하는가? 전혜린이 독일 유학시 머물렀던 슈바빙에 갔다. 대학가라 학생이 많았지만, 그래도 옛날의 그런 도시는 아닌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난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어느나라에 가도 먹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맥도널드와 피자헛이 있으니까. 이것도 세계화인가?
<퓨센>12.15
쾨른에서 졸다가 기차 타고 아우쿠스부르크를 지나 퓌센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디즈니랜드에 나오는 유명한 노히슈반스타인성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물론 완공이 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기차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스호스텔을 겨우 찾아 갔다. 하지만 빈 방이 없어 역 주변의 안내소로 갔다. 그곳에서 소개 시켜 준 민박집에 갔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집이였는데, 가정집이라서 그런지 편안했다.
도버해협을 건너면서 피곤한 몸에 기차에서 잠을 자서 그런지 감기 기운이 몰려 왔다. 그래서 일찍 잤다.
잠을 푹 자고 났더니 몸이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걸어서 성에 올랐다. 성에 오를 때 마차가 지나가는데 말 냄새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관광객은 마차를 타고 말냄새를 맡으며 오르는 것을 보면 역시 관광지라 느낌이 다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성에 오르니,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서양 미디어의 힘을 실감했다.
<프라하 – 순수한 나라>동구권을 통과하면서 세관의 여권검사가 있었다.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았으나 그들을 보는 건만으로도 겁이 났다. 여기부터 동구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유스호스텔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는 아줌마를 붙잡고 길을 물었다. 20대 초반의 딸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우리를 30분 이상을 데리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경찰관에게 데려가 주었다. 어쨌든 그 친절함에 고마웠다. 겨우 찾아 간 유스호스텔은 허름했지만, 반가운 한글이 있었다. 누구누구 왔다 가다… 낚서가 창피스러웠다.
짐을 유스호스텔에 놓고 국립박물관, 바클라프광장, 프라하성을 갔다. 저녁은 빵과 컵라면으로 때웠다.
다음날 찾은 프라하성은 관광지로 변해버린 다른 유럽의 성과는 달랐다. 정말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프라하성 성내는 좁은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성내에 무슨 공연을 하는 것 같은데 얼핏 보면 우리 나라 시장 같이 소박해 보였다. 프라하성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카를교를 지나야 한다. 카를교는 다리 좌우에 있는 동상들이 인상적이다. 다리 위에는 초상화 그려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라하의 니콜라스대성당 구경 후 우리의 주식이 되어 버린 피자를 먹었다. 그리고 빈으로 향했다. 기차에서 한국인을 봤다. 역시 한국인은 어디가나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겨울이라 금방 어두워졌다. 겨우 물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인 ‘원화도’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김치찌게를 먹으니 새삼 맛있었다. 소화도 시킬 겸 시내를 돌아다녔으나 겨울이라 추워서인지 인적이 드물고 시내가 어두웠다. 한국의 가로등이 유난히 밝다고 생각이 든다.(전기요금도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빈>12.19
아침에 한국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김치찌게를 먹었다. 한국을 떠나서 오랜만에 김치찌게를 먹으니, 맛은 한국에서보다는 못하지만, 느끼한 음식만 먹다가 한국음식을 먹으니,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슈테판성당을 구경하고 훈더트 바써의 쿤스트하우스에 갔으나, 문을 닫아 구경하지 못했다.
쉰브른궁전을 겉만 구경하고 나서 맥도널드에 갔다. 항상 어느나라를 가도 분위기는 같은 것 같다. 난 여기 맥도널드에서 목도리를 놓고 왔다. 시간에 쫒겨서 기차역에 갔으나, 놓치고 다음 기차를 탔다. 겨우 도착한 부다페스트에서 숙소를 정하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 우리는 현지식을 먹어야 겠다는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가서 옆테이블에서 주문한 것이 뭐냐고 물어보고 같은 것을 달라고 주문했다. 돈까스처럼 생긴 것 안에 정말 느끼한 치즈가 들어 있어서 우리 모두 1/3정도만 먹고 그냥 나와야 했다. 3명이 20달러나 주고 시켰는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다페스트>12.20
민박집이였는데, 정말 정신이 없는 집이였다. 낡은 아파트에서 민박집을 운영하여 좁고 지저분했으나, 주인은 친절했다. 08:30분에 숙소를 나와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어제의 실패를 교훈 삼아 아침은 맥도널드에서 해결했다.
시타델라를 구경하고 도서관에 갔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는데 관광객이 신기한 듯이 돌아 다녔다.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조금 미안했다. 여호와증인 같은 사람을 만나 한참을 얘기하다 겨우 도망쳐나왔다. 점심은 피자헛에서 먹었다. 기차시간에 쫓겨서 정신없이 먹고 뛰어서야 겨우 기차에 탈 수 있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 6시 50분경에 도착했다. 다시 역에 짐을 맡기고 도오모성당을 보고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했다. 다시 우피지박물관, 피티궁, 피사역을 거처 피사의 사탑을 보고 피사역으로 왔다. 그런데 물을 파는 곳이 없어 한참을 헤멨다. 역시 이탈리아의 기차 답게 기차는 연착했다. 수퍼에서 먹을 것을 사서 호스텔에서 먹고 일찍 잤다.(11시간동안)
<로마>12.22
기차를 타고 로마에 도착했다. 유학생인 이민화씨 댁에 도착했다. 이미 다른 여행객이 투숙하고 있었다. 우리는 짐을 맡기고 스페인광장에서 비를 조금 맞으며 엠마누엘2세기념관에 갔다. 다행이 가이드가 나와 단체관람을 할 수 있었다.(나중에 몇번 로마에 갔지만, 구경할 수는 없었다.)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트레비분수, 페르미니역 근처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폴리>12.23
아침에 페르미니역에서 기차를 타고 나폴리에 갔다. 거기에서 현지인에게 제일 유명한 핏자집을 물어 찾아 갔다. 우리는 거기에서 제일 비싼 피자를 주문했다. 화로에서 넣어서 구웠다. 그런데 시금치같은 것은 덜 익고 피자바닥의 밀가루는 탔다. 마치 삼층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탄부분만 골라서 먹었다. 점심후 폼페이로 향했다. 그런데 기차가 연착을 해서 늦게 도착했다. 박물관은 문을 닫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곳 유원지 같은 곳에서 놀다가 로마로 10시 넘어서 돌아 왔다.
<로마>12.24
아침에 성칼리스토 카타콤베에 서둘렀다. 2시간을 걸려 도착해서 1시간 30분을 기다리고나서야 입장을 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한국어로 된 카세트설명이 있었다. 카타콤베는 기독교 수난시대에 지하에 숨어 지냈던 곳이다. 내부는 엄청 길고 복잡했다. 마치 미로 같았다. 구경후 나올려고 하는 데 가족끼리 구경을 왔는 지 사진을 찍고 있었다.우리는 그냥 지나가는데, 우리를 부른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 사진을 찍었다. 외국사람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과도 사진을 찍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민박집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가 있었다. 파티후 우리는 교황이 직접 참석하는 성탄전야 미사를 보러 성베드로성당에 갔다. 역시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우리는 최대한 가까이에서 교황을 보려고 성당 안으로 들어 갔다. 중간에 통제를 하여 더 이상 들어갈 수없었다. 그런데, 한국말 소리가 들려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 같았는데, 제단 바로 앞쪽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나라 천주교를 이곳에서도 인정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중에 한사람이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어느 성당에서 왔다고 하면서 성지순례가이드에 입장을 부탁하니 우리도 앞쪽으로 들어 보내 주었다.
정말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교황을 주도하는 미사에 참석하고 그것도 앞쪽에서 볼 수 있나니!
1시간 동안 미사 후에 교황이 천계에 올라 왔다.
주변에 있는 카메라가 교황을 향했고 전 세계로 실시간으로 위성중계된다고 하니, 우리도 설례이기 시작했다. 교황 입장이 끝나자 한복을 입은 어린이가 꽃다발을 교황에게 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교황이 참석하기 전까지는 겨우 졸음을 참았는데, 교황이 주도하는 미사가 시작하자, 앞쪽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부 안보였다. 모두 피곤해서 주무시고 계신 거였다.나도 파티에서 먹은 잡채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 졸음이 몰려 왔다. 조금 뒤에 일행 8명이 전부 졸았다. 어쨌든 한참을 졸다 보니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보니 미사가 끝났다. 2시였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잠이 들다니..아마, 전세계적으로 우리 모습이 방영되었을 것 같다. 더우기 우리 맞은편 윗쪽에 방송카메라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1시에 택시를 제외하고 모든 교통수단이 끝났다. 택시를 탈 형편은 못 되어서 우리는 숙소까지 걸어서 왔다. 우리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했다. 20여 km를 걸어서 왔다니.. 뛰다시피하면서 걸었다. 정말 피곤했다.
<로마>12.25
어제의 피곤함으로 늦잠을 잤다.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최후의 만찬이 있는 바티칸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로마을 떠나야 했다. 저녁에 밤기차를 타고 밀라노로 향했다.
밀라노에서 침대차로 갈아타고 스위스로 향했다. 와인 오프너가 없어서 스피츠 역에서 정차하는 동안 역내 식당으로 갔다. 오프너 좀 빌려달라고 그랬더니 직접 병을 들고 가더니 와인을 따서 갔다 줬다. 역시 친절한 사람들이다.역내를 구경하다 역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는 정말 놀라운 광경을 봤다. 마을 앞쪽으로 그림같이 맑은 호수가 있고 건너편으로는 만년설이 덮혀있는 산이 있는 풍경이었다. 잠시 풍경에 취해 있다가 갑자기 열차가 출발할 것 같아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출발하려는 기차에 겨우 탔다.
인터라켄에서 내려 유스호스텔에 갔는데, 유스호스텔에 여러 나라 국기가 걸려 있는데 우리나라 태극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국에서 우리나라 태극기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래서 각국 사람이 모이는 호텔등에는 각 나라의 국기를 걸어 놓다 보다.
여행중 묵었던 숙소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호스텔이다. 시설도 깨끗하고 세계 여러나라 젊은이를 만날 수 있다. 항상 저녁시간에 지하의 바에 가면 젊은 음악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체크인을 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짐을 맡겨 놓고 인터라켄 마을 구경에 나섰다.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융프라우에서 스키를 타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전부 스키복을 입고 있었으며 스키를 차에 달고 다녔다. 물가는 서부 유럽의 도시보다도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 유스호스텔에서 칼로 유명한 스위스칼을 샀다.(물론 귀국 직후 잃어 버렸다.)
여기에서는 샤워을 간단히 해야 했다. 동전을 넣고 나서 일정시간이 되면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없이 머리 먼저 감고 마무리해야 했다.
<융프라우>12.27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호스텔에서 아침용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호스텔에서 할인받은 기차요금이지만 단순히 산에 올라 갔다 오는데 10만원을 내야 한다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우기 오늘처럼 흐린 날에는 밖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을 지도 모른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겨울이라 아침 7시에도 어두웠다. 7:30에 2번째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워낙 산이 높아 중간에 스키장에서 협궤열차로 갈아 탔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기차는 조금 무서웠다. 정상에 올랐지만, 역시나 눈보라가 심해 밖에 나가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얼음동굴은 인상적이었다.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융프라우 있는 우체국에서 집으로 엽서를 썼다.
<파리>12.28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파리에 도착했다. 루상브르역 근처 공원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인 숙소를 찾아 가는 길에 보니, 아직도 어두운 새벽이지만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또한 개똥이 무척 많아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마침 같은 방에는 한국인이 묵고 있었다. 3개월째 여행이라고 한다. 저녁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경비를 벌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짐을 맡기고 베르사이유 궁전에 갔다.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우리는 정원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전부 쳐다 봤다. 밥 먹는 거 처음 보나(?)
상젤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으로 향했다. 마침 년말이라 가로수에 크리스마스장식을 해서 거리가 굉장히 화려했다. 그리고 지나는 사람을 보면 옷은 아무렇게나 입은 것 같은데도 멋있어 보였다. 신체구조가 좋아서인지 패션감각이 있어서 인지, 내가 사대주의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신시가지인 라데팡스를 갔다. 끝내주는 건축물이 많았다. 근처 분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대형슈퍼에 가서 저녁거리를 샀다.숙소로 돌아와서 라면에 밥을 해먹었다. 분위기는 안어울려도 수퍼에서 사온 화이트와인을 먹었다. 라면에 와인이라니…
대학 후배와 같이 온 여행은 그런대로 호흡이 잘 맞았다. 그런데, 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한국인이 있는 곳 위주로 여행을 하다보니, 외국인과 대화의 기회도 적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행동하기로 했다.
나는 아침에 소르본대학에 갔다. 한국과는 달리 대학에서 많은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내부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 난 노틀담사원에서 영화 노틀담이 곱추를 회상했지만, 실감이 되지 않는다. 난, 영화에서 본 뽕네프다리를 건넜다. 낮이라 영화에서 처럼 불꽃놀이는 없었다. 좌우지간 난 영화속 장면으로 들어 온 것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다음으로 큰 루브르박물관에서 난 1시간을 기다렸다. 엄마와 동생을 찍어주는 언니의 모습을 보니, 무척 부러워 보였다. 다음에 나도 가족과 함께 여행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정작 유리피라미드까지 줄을 선 다음에 우리는 시간에 쫒겨서 구경을 하지 못하고 그냥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오페라하우스에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쉬고 놀고 있는 모습에 문화에 대한 관점이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마르뜨언덕을 걸어서 올랐다. 다시 삐갈거리를 지나 에펠탑에 왔다. 베낭족은 역시 튼튼한 다리가 필수이다. 다시 비 맞으며 에펠탑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 벨기에에서 온 여자와 얘기를 했다. 나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그 벨기에 여자도 참 영어를 못했다. 하지만 얼굴은 이뻤다. 에펠탑에 올라 파리의 야경을 봤다. 야경은 멋있는데, 어디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다시 라데팡스를 와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입구에서 흑인들이 모여 있으면서 내가 지하철을 타려고 하니 표찰구 입구를 막으면서 장난쳤다. 순간 긴장이 되었지만, 무시하면서 건너가니 그냥 내버려 두었다. 속으로는 굉장히 놀랬다. 그 뒤로 지하철 내에서도 흑인만 보이면 괜히 무서웠다. 이럴 때는 후배가 있으면 조금 다행일 텐데.. 역시 외국에서는 밤늦게 혼자 다니는 것은 무섭다.
<파리>12.30
오늘은 유럽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보지 못한 루브르박물관을 갔다. 다시 1시간 10분을 기다린 다음에 입장할 수 있었다. 책에서 많이 본 모나리자, 비너스상을 봤다. 책에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대하면, 뭔가 예술적인 감흥이 와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뽕네프 근처 사진점에서 사진을 맡기고 오르세미술관에 갔다. 거기에는 미술시간에 본 인상파 그림들이 대부분 있었다. 또한, 우리 나라 미술관과는 달리 관람 중에 피곤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아예 어떤 학생은 구경은 안하고 책만 있고 있었다.비행기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쉬움을 두고 나오는데 섹스폰 소리가 들렸다. 생각해 보라! 처음으로 유럽에 간 베낭족이 이제 여행이 끝나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서 나오는데, 빨란색으로 덮인 노을속에 내 마음을 달래주는 섹스폰 소리가 들려온다고.. 나도 모르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제까지 한번도 거리의 악사에게 한 푼도 주지 않던 내가 이제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 가야한다는 아쉬움과 멋있는 풍경에 거금을 주고 왔다. 덕분에 나는 시간에 쫒겨서 겨우 숙소에서 후배를 만나지 못할 뻔했으며, 후배와 함께 베낭을 메고 정신없이 뛰어야 했다.
<싱가폴>12.31원래 일정에는 싱가폴은 비행기만 갈아 탈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여행하고 싶은 생각에 파리에서 떠나올때 공항에서 일정을 바꿨다.
한국과 유럽은 겨울이었는데, 싱가폴은 여름중에서도 한여름이었다. 기후까지 변하니, 피곤이 누적되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에어콘도 없는 방에서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싱가폴>1.1
아침에 늦잠을 자고 난 2박 3일간의 말레이시아 기차여행을 위해 예약을 했다. 하지만 10분도 되지 않아 어제 밤의 악몽이 생각났다. 에어콘도 없는 기차에서 3일동안 여행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약을 취소했는데, 5만원 상당의 돈이 수수료로 없어졌다. 세상에 유럽에서도 아끼고 아껴서 여행했는데, 10분만에 5만원이 날라가다니..
시내를 구경하는데 정말 좋은 옷을 입은 여자들을 봤다.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즉, 몸매가 안 따라 주는 것이었다. 파리에서는 대충입어도 멋있어 보였는데, 아무래도 동양인은 동양인에 맞는 옷을 입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시장을 구경했는데, 우리나라 남대문시장과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는데, 역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너무 더웠다. 차라리 지하철에는 에어콘이 빵빵하게 돌아 가던데..
<싱가폴>1.2
아침에 산토사라는 섬에 갔다. 섬도 아니다 우리나라 여의도 보다 작아 보였다. 어쨌든 나는 자전거를 빌려서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서 휴양을 했다. 나무 그늘에서 잠을 자고 났더니, 피곤이 조금 풀렸다.싱카폴 공항에서 나는 줌렌즈를 샀다. 싼 가격에 샀지만, 나중에 별로 활용하지 못했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 보다.
한국에 오니 한강도 멋있어 보이고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다시 한국에 오니 겨울이라 적응을 못하고 먹을 것이 체해 도착한 다음날 병원에 입원해서 24시간 잠만 자고 퇴원했다.
그 뒤로도 난 유럽을 3번 더 갔었지만, 처음만큼의 흥분과 감동은 없었던 것 같다. 비록 9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싯점에 새삼스럽게 여행후기를 쓰냐고 누가 묻는다면 누구나 처음 느꼈던 흥분과 감동은 다시 느끼지 못하므로 잘 간직하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싶다.(‘03.11)
이 글을 작성하는 데 아내가 이런 정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한다. (맞습니다. 맞고요~~) 여행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이 사이트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행지 기후, 관광지 정보, 환율, 숙박지 등은 내가 그리 체계적이지 못한 사람이기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음을 밝힌다.















































우리가 파리를 방문하기 몇 개월 전에 중요한 일이 있었다. 1997년 9월 4일 라데팡스에서 열린 IOC에서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