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곳에서 퍼온 글이다. 저자는 인도에서 오랜 동안 생활하고 있는 대학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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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거에 수신(修身)을 중시하였던 것처럼 인도인들이 중시하는 교육 지표가 있다. 물론 요즘은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에 녹아들어 있는 생활 윤리들이다. 인도의 대 서사시 마하바라타 중에서 알주나와 크리슈나 신이 대화하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 바가바뜨 기따다. 인도인이 가장 중시하는 경전이다. 마야(Maya), 모(Moh), 크로드(Krodt)이 세 가지를 주의하도록 가르치는 내용이다. Maya는 돈을 의미한다. 돈을 주의하라는 말은 돈은 필요하지만 돈을 쫓는 삶을 살지 말라는 말이다. Moh는 세상의 것들에 예를 들면, 세상 명리나 색에 유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Krodt는 분노(忿怒)로서 내면을 가라앉혀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이다.
물질을 쫓거나 주색을 추구하는 삶, 화를 금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세 가지 모두 힌두교의 금욕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유혹에 대한 경계이고 세 번째는 자기 통제를 잃은 화를 경계하고 있다. 이 세 번째 경우, 인도인들이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는 세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첫째 인도에서는 화내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많은 인도 초등학교에는 우리나라의 도덕 시간 같은 moral education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는 빨간 불이 켜졌을 때 찻길을 건너면 안 되고,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식의 공중도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에는 주로 기따나 또는 힌두 신들의 이야기를 배운다. 성경이나 불경, 논어에서 많은 인생 교훈을 배우듯이 인도인은 이러한 신화 또는 전승을 통해서 내면적 가치관을 배운다. 그중에 핵심이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화내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는 것을 무의식 속에서 정죄하는 분위기다.
어떤 사람이 화를 내는 경우,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차적으로, 그 사람을 인격 훈련이 덜된 사람으로 판단한다. 이차적으로, 그 사람이 화가 나 있는 동안은 아무도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화가 났을 때는 바른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미한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것이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거나 말다툼을 하면 전통교육에 익숙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1부터 10까지 수를 세라고 가르친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세다 보면 화가 반감되어 버리고 분노로 인한 최악의 결정을 피하게 된다. 인도인은 어릴 적부터 아무리 상황이 불합리해도 화를 내는 것이 좋지 않은 결정을 가져온다는 것을 몸으로 익힌다.
둘째는 화내는 사람은 힘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소리를 칠 때 겁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현재 좌절하고 있구나 라고 판단한다. 호랑이는 다른 동물을 만날 때 풀떡대지 않는다.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닭은 힘이 없기 때문에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회를 친다. 그 힘이 정치력이든, 행정력이든, 사회 지위에서 오는 힘이든, 금력이든, 정신력이든 화를 내는 상대는 힘이 없다고 판단한다. 학교 앞에서 남루한 남자가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사이클 릭샤 왈라에게 소리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릭샤 왈라는 꿈적도 안 했다. 말 한마디 안 했다. 화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설명하고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인도인은 이와 같이 화를 내지 않도록 가정과 사회에서 훈련을 받는다.
셋째는 화내는 사람은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 화를 내고 있다고 판단한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에게 오류가 있을 때 그것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도 사람들이 화를 낼 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화를 다스려야 하는 줄을 알기에 갖은 수단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화를 내는 성품을 다스리기 위해서 반지를 점성술에 맞추어서 낀다. 인도인 성인 남녀가 끼는 반지들은 멋을 내기 위한 경우가 아니다. 사주에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왜 인도인들은 화내지 않는가? (12억 인도를 만나다, 2013. 12. 13., 북치는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