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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 나는 식사시 주는 와인을 연거푸 마셨더니, 나중에는 얼굴이 빨갛게 취했다. 덕
분에 나는 지루하지 않게 계속 잠을 자면서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그래서 우선 파리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몽마르뜨언덕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
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언덕 올라가는 입구에서 와플처럼 생긴 것을 사먹었는데, 배가
고파서인지 정말 맛있었다.난 5년만에 다시 찾은 유럽이기에 반가움이 앞섰다. 몽마르뜨언덕위에 성을 별 볼만 한
것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 대학로에 많이 있는 화가들로 유명하다. 난 돈이 없어 사진을
그리지는 못하고 그냥 방문객으로 구경만 했다.다음에 우리는 루브르박물관으로 향했다.<에펠탑>
파리시내에 있는 외환은행을 들러 돈을 찾았다. 외국에서 내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하는
것이 안된다고 한다. 즉, 현금서비스만 가능하다고 한다. 더우기 점심시간이 겹쳐 오랫동
안 기다려야 했다.에펠탑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까지 올라왔다. 추운 겨울인데도, 어떤 꼬마와 엄마가 같이 계단을 통해 에펠탑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본가에 맡기고 온 지윤이 생각이 나서
국제전화를 했다.국제전화를 했다. 그제서야 우리가 떠난다고 했던 여행이 유럽여행임을 알려 드렸다.에펠탑을 보고 다이애나황태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소를 갔다. 그곳에는 아직도 많
은 화환들이 있었다. 귀족출신이 아닌 일반 평민으로서 황태자비가 된 것을 보고 많은 사
람들은 동질감을 느끼나 싶다.
디지탈카메라를 가지고 왔는데, 메모리가 꽉차서 포럼데알 근처에 있다는 PC방을 찾아 헤멨다. 로럼데알지하철역에는 쇼핑몰은 다양했다. 우리는 피자한조각씩을 입에 물고 쇼핑을 했다. 우리는 그동안 신고 있던 신발이 불편해 고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발가게에서 한참을 시간을 보냈다. 결국은 사지 못하고 시간만 뺏기고 역내 쇼핑몰을 나오니 어두워 졌다. PC방을 찾지 못하고 카페에 동전 넣고 하는 인터넷PC만 보고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는 수 없는 우리는 한국에서 찍어온 사진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진중에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지웠다. 앞으로는 사진을 마음대로 찍지 못할 것 같다.
<루이비똥 아르바이트>
저녁에는 개선문을 갔다. 저녁에 오는 개선문은 웅장함 대신 역사의 흔적처럼 남았다.
상제리제거리에서 애들옷을 사고 있었는데, 한국인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베테통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엉겁결이라 우리는 시간이 없어 안한다고 했다.
저녁에 민박집 아줌마한테 물어 보니, 만약 할 의사가 있으면 아는 사람이 있으니 한번 해보라고 한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삼아 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에 민박집으로 우리를 데릴러 왔다. 그사람은 먼저 루이비똥 가게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가서 카퓨치노 한잔을 사주었다.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루이비똥에 가기 전에 우리가 사야할 품목을 기억하기 위해 카다로그를 보면서 최신품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웠다. 즉 최신유행의 품목을 사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성공적으로 마치고 25,000원정도을 벌었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온 것에 비하면 손해였지만,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교외에 있는 베유사이유궁전에 갔다. 넓은 정원을 걸으며 산책을 했다. 정원은 엄청 넓었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아득한 정원은 아닌 것 같았다.
난 또다시 파리의 마지막코스로 오르세미술관을 택했다. 철도역사를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이다. 중학교 미술책에 많이 나오는 인상파작가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었다. 파리를 떠날때 여기를 방문하지만 여기를 올때마다 오래 머물러 있고 싶다. 비록 자장면을 시켜 먹을 수는 없지만 낮잠도 한숨 자고 나서 천천히 구경을 하고 싶었다.
<바토무슈 유람선>
민박집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노트북을 잠깐 봐달라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언어로 된 윈도우즐 설치하였기에 한글을 쓸수가 없었다. 언어팩을 깔면 될 것 같았지만 잘 몰라서 그냥 한글OS를 다시 깔아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해결책을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고맙다고 내게 세느강 유람선 티켓을 주었다. 다른 것은 보통 코스가 짧은데, 이것은 좀 멀리까지 가는 것이었다. 저녁 시간에 탔는데, 파리의 색다른 야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인터라켄에 도착을 했다. 이번 여행에는 아내와 함께 왔기에 전에 왔던 유스호스텔 보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저렴한 민박이나 호텔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책자에 나와 있는 “홍씨 아저씨네”로 갔다. 인터라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이 경영하는 중국집이다.
이아저씨 이력은 대단했다. 영국에 유학을 와서 공부하던중에 태권도 시합에서 우승하여 신문에도 났었다. 하지만 이아저씨가 직접 운영하는 호텔은 비쌌다. 중국집에 있는 메뉴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냥 물 한잔 얻어 마시고 그냥 나왔다. 하는 수없이 전에 묵었던 유스호스텔에 갔는데, 마침 가족을 위한 방이 있었다.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시 와도 좋은 곳이었다.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스위스칼을 샀다. 하지만 싱글이었을때는 큰 칼을 샀지만 결혼을 하니, 가격이 저렴한 작은 것으로 골랐다.숙소를 정하고 근처 PC방을 찾았다. 마침 1개가 있었지만, 그날은 문을 열지 않았다. 나중에 사진관에서 알아보니, PC방이 너무 장사가 잘되어 쉴 시간조차 없어 그날 문을 열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근처 사진관에 갔는데, 우리나라 사진관과는 달리 최신 기술장비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디카사진을 밀착을 해주기도 하고 CD로 구워주기도 했다. 우리는 디카의 메모리를 CD에 담아 달라고 했다. 내일 융프라우에 올라가야 하기에 일회용카메라를 구입했다.
다음날 새벽에 우리는 유스호스텔에서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가지고 기차역으로 갔다. 이른 새벽이지만, 할인을 해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을 거라고 했다. 정말 올라가는 동안 날이 밝았는데, 정말 깨끗한 하늘이 보였다. 올라가는 도중에 바라본 눈은 정말 순백 그자체였다. 융프라우 정상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기가 막혔다. 과연 유럽의 지붕이라 할만했다.멀리 봉우리가 다 내려다 보였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썰매를 탔다. 남들은 스키를 타지만 우리는 스키를 탈 줄을 몰랐기에 대신 눈썰매를 탔다. 우리나라의 눈설매와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여기서는 기차를 타고 올라간다. 내려오는 코스는 긴기만 한것이 아니라 정말 난코스였다. 우리는 초급,중급코스을 탔는데도 아찔했다. 커브길에서 조금만 미끄러져 코스를 벗어나면 낭떨어지가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떨어지면 구조된다는 것은 불가능할만 한대도 보호망조차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린애처럼 신났다. 우리나라는 탈만하면 내려야 하는데, 여기는 한참을 타고 계속됐다. 더우기 가끔 무서운 코스도 있어서 스릴을 맛볼 수 있었다. 중간에 기차타고 내려 왔어 한국사람을 만났는데, 그사람들은 끝까지 눈썰매를 타고 왔다고 한다. 일행중에는 여자도 있었는데, 저사람들은 한국에서 올때 “겁”을 놓고 왔다 싶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할때 아내는 이곳을 꼭 넣자고 했다. 난 그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도시 정도라고 생각을 하였다. 실제로 와서 보니 정말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었다.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겨 있었다. 콘도르라는 작은 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배를 타고 건물간 이동을 한다는 것이 불편할 지는 몰라도 이곳 방문객에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역으로 오는 길 주위에 예쁘게 장식한 시계를 파는 곳이 있었다. 꽃으로 장식된 시계였다. 나는 그냥 이쁘다. 정도였는데, 아애는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곳을 떠날때까지 계속 아쉬워했다. (그뒤 3년뒤에 로마에서 같은 시계를 사다 주었는데, 그때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차고 다닐질 않는다.) 떠날 때 시간에 있어서 역내를 구경을 했다. 그런데 입구쪽에 피자를 파는 곳이 있었다. 지난 유럽여행에서도 느낀 거 지만 정말 유럽의 피자는 맛있다. 큰 피자판위에 사각으로 짤라서 팔고 있었다. 난 버섯이 잔뜩 들어간 것이 맛이 있었다. 피자는 두꼅지도 않고 또, 너무 얇아서 바삭거리지도 않았다. 위에 토핑은 미국식의 큰 고기덩어리가 있지도 않고 짤게 썰어져 있어 고기에 대한 부감없이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성당앞에는 비둘기 세상 같았다. 사람들 주위에 엄청난 비둘기떼가 몰려 들었다. 사람들이 무서워할 정도였다. 노을이 멋있게 지고 있었다. 이슬람양식으로 지어진 교회 위로 해가 지고 있었다.
역으로 가는 길에 나무로 만든 수공예품 가게가 있었다. 나무로 만든 실무크기의 오토바이를 전시해 놓고 있었는데, 정말 멋있었다. 우리는 애기코끼리 모양으로 되어 있는 벽걸이시계를 사가지고 왔다.
조금 지나오니, 유리수공예를 만드는 곳이 있었다.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외부 유리를 통해 직접 볼 수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파이프같은 것을 이용해 바람을 불어 여러형태의 유리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침대기차를 타고 새벽녁에 로마에 도착했다. 우리는 민박집에 있는 테르미니역에 가야했는데, 한정거장 전에서 잘못 내려 전철을 타고 다시 테르미니역으로 갔다. 그민박집은 중국인 교포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건물은 대략 2-3백년 정도 된 것 같았다.
계단은 가운데가 닳아져 있었다. 다행이 칸막이로 분리된 방을 우리들한테 빌려줬다. 마침 아침을 먹고 있어서 같이 먹고 로마 관광을 시작했다.테르미니역은 시내에 있어 로마관광을 걸어서 할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는 트래비분수에 가서 동전을 던진후 애들 옷을 사러 갔다. 항상 트래비분수앞에 있는 베네통은 세일을 했다. 그때도 연말이라 세일을 하고 있었다. 그뒤로도 우리는 애들옷을 사기 위해 베네통이라는 간판만 보이면 옷 사러 들어 갔다.
이탈리아의 도시 로마안에 또하나의 나라가 있는 곳인 바티칸에 갔다. 베드로성당의 규모는 엄청났다. 성당 위쪽에서 내려다 본 광장은 천국으로 가는 열쇠구멍 갔다. 혹, 누구는 하느님이 두 팔을 벌려 인류를 껴안는 모습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티칸을 나와서 주변을 걷다가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 근처 식당에 갔다. 실내에는 자리가 없어 밖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옆에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던 할머니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 하셨다. 자기 동생이 수녀인데, 한국에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결혼기념하기 위해 유럽여행을 왔다고 하니, 할머니가 달리 선물할 것이 없다고 우리에게 맥주를 사주고 싶다며 돈을 주고 가셨다. 남으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것이 생소했지만 할머니의 성의을 무시할 수 없어 맥주를 사먹었다. 스파게티는 맛이 없었지만, 맥주는 맛있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며칠남지 않자 우리는 로마의 모든 것이 아쉬웠다. 더우기 디카를 가져오는 바람에 사진을 실컷 찍지도 못하니 아쉬움이 더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었다. 비록 내가 영어는 잘 못하지만 그래도 다니면서 언어로 불편은 느끼지 않게 이번 여행을 함께 했는데, 내가 항공권 재확인하는 전화통화를 듣더니, 새삼 노래는 것이다. 영어 발음이 좋다나! 원래 영어회화는 상대적인 거라는 것을 모르나? 상대방이 유창한 영어로 하니 당연히 나도 내 본 실력이 나올 수 밖에..~~
▣ 여행 후기
이번 여행은 결혼전에 아내와의 유럽신혼여행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난 것이었다. 4일만에 여권 재발급, 항공권 예약, 여행스케쥴, 유로패스 등 모든 준비를 하여 갑자기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난 그때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고 있고 아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
































































































































